[참회의 고백]
- Written by 大和 -
폭염 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는데 오늘 아침은 바람이 불어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더위 때문에 며칠 산책을 나가지 못했는데 오늘은 산책하기로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산책로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나를 반기고 있다. 내 나이 육십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말한다. ‘선생님은 참으로 인상도 좋으시고 곱게 늙어 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보니 거기에 편안하게 보이는 얼굴이 있었다. 과연 이게 나인가?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 앨범에서 본 나의 모습과는 전혀 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했을 때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다시 앨범을 꺼내 펼쳐 보았다.
사진 거의 전부가 이 세상 고통과 괴로움은 다 짊어지고 가는 것 같은 일그러진 얼굴,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차서 원한으로 이글거리는 눈 술에 취한 몽롱한 모습뿐이고 정상적인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여기에는 분명히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인양 착각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철저하게 산 원인이 있을 것 같다.
우선 나의 성격부터 검토해보아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나의 성격은 소심하고 비유가 없고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이런 성격이 형성된 배경에는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 탓도 있겠지만 어려서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생활을 한 데에서도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보다는 돈을 벌어야 되겠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이 되어 1974년부터 공직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고 직장에 대한 정보도 전무한 상태에서 직장생활을 해나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고통과 시련이 뒤따랐다. 대인관계가 미숙한 나에게 그나마 끈을 연결해준 것이 술이었다.
술을 마시면 배짱도 생기고 이야기도 잘 되고 용기도 나곤 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술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결국은 나를 잡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처음에는 술은 하나의 활력소였다. 퇴근하고 마음에 맞는 동료와 같이 술을 주고받으며 대화의 장을 넓혀 나갔다. 그러다 보니 술친구도 생기고 직장생활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
이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다. 물론 술은 항상 내 곁에 두고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술 마실 이유가 너무 많이 생겨났다. 기쁘면 기쁘다고 한 잔, 슬프면 슬프다고 한 잔, 화나면 화난다고 한 잔 하다 보니 술 마시는 횟수가 잦아져 갔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고 가정을 꾸리며 정상적인 음주생활은 40대 초반까지 이어지다가 그 후부터는 문제 음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내가 술을 찾는 주된 이유가 화나고 스트레스받을 때 그 상황을 잊기 위해 술을 찾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해서는 일보다는 퇴근해서 술 마실 방법만 연구하고 같이 마실 동료를 찾는데 열중했다.
술을 마시면 잠시 동안이지만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 황금빛 희망이 나를 찾아온다. 거기에는 원대한 꿈과 계획이 있다. 여기에 몇 번이고 부라보를 외치며 나는 점점 술의 노예가 되어 간 것이다.
필름이 끊기는 일이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고 기억력이 감퇴되고, 집에 오는 길을 잃어버려 헤매고, 주변 동료들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화를 내는 등 실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도 와이프한테 괜한 트집을 잡고 화내고 폭언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불안과 초조가 찾아오면 이것을 해소하려고 술을 마시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 음주운전을 해서 집에 오는 일도 늘어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런 현상이 금단 때문에 오는 것이고 이 금단 현상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상황을 겪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한다.
점차로 심각한 문제 음주생활을 하는 가운데 나는 건강도 잃어가고 있으며 급기야는 해장술을 하게 되고 직장을 하루 이틀 빠지게 되고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은 병원을 찾게 되고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병명의 진단을 받게 된다.
인간으로서 말할 수 없는 비통함과 내 인생의 바닥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치료받으면서 회복의 길을 가고 있다. 이때 나이가 60세였다.
정년퇴임을 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여행도 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여 지금은 중독 재활 복지사,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지금 단주한지 5년이 되었고 금연한지도 3년이 되었다. 중독 재활복지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이 술에는 알코올, 담배에는 니코틴이라는 향 정신 물질(약물)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향 정신 물질이 무엇인가? 바로 정신을 조절하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약물을 하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도 담대해지는 것 같고 그런 것인데 이런 정보를 모르고 나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댄 것이다.
알코올이 인체에 미치는 해악을 알지 못했고 그저 순간순간 이어주는 쾌락과 편안한 마음을 주는데 익숙해지고 그것에 너무나 의존해서 결국은 알코올 의존 자 가 된 것이다.
약물을 벗어나 생활하는 지금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가족들이 좋아하고 주변 친구들이 좋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존감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이젠 술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 나의 감정을 술에 맡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변에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며 당당하게 살 것이다.
내가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의지만으로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가족의 힘, 주변 사람의 기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high power) 의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폭염 더위를 이기려고 산책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쓰면서 참회해 본다.
이제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산다. 그리고 매일매일 마음을 비우는 생활을 한다. 그런 결과 편안한 얼굴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칭찬해 주는 그들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다.
갑자기 수십 년간 알코올 노예가 되어 살았던 고통과 괴로움을 훌훌 벗어던진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더워도 감사한 오늘이다.
신이시어! 오늘 하루도 살아 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